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글분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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여러문장연습
/ 소설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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제목 |
태백산맥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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조회수 |
411 |
비고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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실행수 |
344 |
프로그램 |
여러문장연습
(한국어)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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추천수 |
1 |
등록자 |
sunghee43
(장성희) |
스크랩수 |
221 |
등록일 |
2010/05/19 13:42:17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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마루에 햇볕이 반나마 젖어들어 이었다. 울타리를 치고 있는 탱자나무들 윗가지마다 해맑은 현초록빛 새순등리 한 뼘 길이로 솟아오르고, 그 연하디연한 새순들에는 또한 연한 가시들이 서로 엇갈림하며 돋아나 있었다. 그 쳔초록 새순들은 한 해를 지낸 바로 밑가지와, 여러 해를 지낸 더 아래쪽 밑가지들이 띠고 있는 진초록빛과 확연하게 구분되었다. 그 연한 새순들이 여름을 지내고, 너무 지해 검은 빛이도는 초록빛 탣자들이 샛노랗게 익어가는 가을이 오면 믿을 수 없도록 억세고 단단하게 변해버렸다. 물론 그 빛깔도 밑가지들과 구분할 수 없도록 하나가 되어버리고, 가시들도 언제 부들거미며 후어지고 구부러졌나 싶게 가지를 닮아 억세고 단단해져 있었다. 울타리을 이루며 촘촘하게늘어선 탱자나무들의 가지가지마다 작고 하얀 탱자꽃들이 수없이 피어나 있었다. 그 작고 하얀 꽃들은 갓 돋아나기 시작한 초록빛 잎들 사이사이에서 눈송이들이 얹힌 것처럼 흰빛의 정갈함을 깔끔하게 드러내고 있었다. 탱자나무울타리는 토담이나 싸리나무울타리, 대발울타리 같은 것들과는 달리 계절을 따라 그 모습을 다양하게 바꾸는 저취를 지니고 있었다. 봄이면 꽃울타리였고, 잎 무성한 여름이면 초록비단울타리였고, 탱자가 노랗게 익는 가을이면 황금덩이 울타리였고, 잎도 열매도 다 떨어진 겨울이면 가시울타리였다. 무더운 여름이면 으레 웃통을 벗어제치고 등물도 하고, 그런 모습인 채로 감나무 그늘 아래 놓인 평상에 나앉기도 했다. 그런데 무성해진 탱자나뭇잎들은 그런 모습들을 자연스럽게 가려주는 초록비단이 아닐 수 없었고, 그런 흉스런 모습을 안 보여도 되는 겨울이 오면 탱자나무울타리도 잎 다 떨군 가시울타리로 바뀌어 있었다. 남도의 농가에 싸리나무울타리나 대발울타리보다 탱자나무울타리리가 더 많은 것은 무슨 까닭일까. 싸리울타리나 대발울타리는 몇 년 간격으로 새로 울을 쳐야하는 번거로움이 있지만 탱자나무는 한번 심어놓기만 하면 해가 갈수록 싱싱하고 실한 울타리가 되는 평생묵기라서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. 절기가 바뀜에 따라 변하게 되는 농가생활의지나친 노출을 서로간에 살짝살짝 가리는 데 탱자나무는 안성맞춤이었던 것이다. 그건 생활과 자연을 적절하게 조화시켜 활용한 슬기고 지혜였던 것이다. 그리고 또 한 가지, 토담이든 싸리울이든 대발울이든 탱다나무울이든 모두가 일치된 공통절을 지니고 있었다. 토담을 쌓되 그 높이는 고샅을 걸어가는 보통 키의 어른 눈높이 정도로, 그낭 걸어갈 때는 집안이 안 들여다보이고 무슨 볼일이생겨 살람을 부르거나 인기척을 낼 때는 발뒤꿈치를 들어 목을 늘이면 집안이 다 들여다보이도록 했다. 나머지 울타리들도 아무때나 눈길만 돌리면 집안을 들여다볼 수 있게되어 있었다. 네 가지 울이 갖는 공통점은 모든 집들이 개방되어 있다는 접이었다. 그것은 한 마을이 한집안처럼 감추는 것 없이 터놓고 살며 서로서로 정을 나눈다는 친족의식과 집단의식의 표현이었다. 그러니까 울타리들은 도둑을 막자고 친 것 아니라 경계으 표시일 뿐이었다. 그러나, 그건 어디까지나 서민들의 삶의 모습이었고, 예로부터 부자면 부자일수록 권세가 크면 클수록 담은 두껍고 높아지게 마련이었다. 하연 꽃 곱게 핀 탱자나무울타리를 따라 암팡지게 생긴 암탉이 느릿느릿 발을 옮기다가 한바탕씩 땅을 헤집어파고는 했다. 그 뒤를 예닐곱 마리의 명아리들이 종종걸히며 따라가기도 하고, 쪼르륵 달려가기도 했다. 그런 병아리들이 연방 삐약삐약 그 맑고 고운 소리들을 내고 있었다. 병아리들이 서로 다투어 쪼르륵 달려가는 것은 암탉이 한 바탕씩 땅을 헤집어판 다음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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